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와타 케이스케 (문단 편집) == 여담 == * 많은 아티스트와 두루두루 친한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같은 소속사인 [[아뮤즈]]의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매우 친하다. 그리고 같은 소속사의 [[포르노 그라피티]]의 경우에는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사잔 올 스타즈와 같은 소속사 가수가 되고 싶어서 현재 소속사인 아뮤즈를 선택했을 정도로 존경과 친분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소속사로는 [[미스터 칠드런]]의 사쿠라이 카즈토시와도 친하다. 미스터 칠드런의 음악 프로듀서이기도 한 코바야시 타케시가 쿠와타의 솔로음반과 사잔 올 스타즈의 일부 음반에서 키보드 서포트와 프로듀싱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 외에 동향 치가사키 출신의 선배가수인 [[카야마 유조]]를 경애하기도 하면서 친분이 쌓여 80년대에 카야마 유조 & 쿠와타 케이스케로 방송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2014년에는 카야마 유조의 무도관 공연에 축하 게스트로 출연한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 국민 가수들과의 친목?~~ 그의 인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례가 2006년에 사잔 올 스타즈 명의로 개최했던 공연이였던 몽인도 페스티벌이였다. 이때 같은 소속사의 후쿠야마 마사하루, [[포르노 그라피티]], 비긴 등을 포함하여 미스터 칠드런에 [[GLAY]]까지 섭외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와다 아키코]]와도 친분이 있다. 2008년에 와다 아키코가 한 방송에서 자신의 노래를 쿠와타가 리메이크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 발언 이후 실제로 같은 해 12월에 쿠와타가 자신의 솔로 이벤트 공연인 혼자서 홍백가합전의 마지막 노래로 리메이크해주기도 하였다. 음악계 이외에는 뮤직 스테이션의 진행자인 [[타모리]]와 오랜 친분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쿠와타에게 '''쿠와타 군'''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 [[아카시야 산마]]와는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적 있고 사잔의 콘서트에 영상 축전을 여러 차례 보내기도 한 사이이다. * 그리고 쿠와타의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도, 공인받은 사람들도 꽤나 있다. 후배 가수 중에서 [[히라이 켄]]과 [[aiko]]는 자신의 발매작품에서 꾸준히 사잔 올 스타즈와 쿠와타 케이스케의 노래를 리메이크할 정도로 열성적인 팬이다. 쿠와타 케이스케가 암투병 이후 뮤직 스테이션 복귀 방송을 가졌을 때 같이 출연했던 aiko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 [[야마시타 타츠로]], [[타케우치 마리야]] 부부와도 친하다. * 하지만 그런 쿠와타와도 사이가 안 좋은 가수가 있는데 바로 한국에서 [[RUN(나가부치 츠요시)]]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나가부치 츠요시]]... 쿠와타 케이스케가 본인 솔로 싱글에서 나가부치에 덤으로 쿠와타 입장에서도 대선배인 [[야자와 에이키치]]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의 가사를 썼다. --당시 가사를 보면 솔직히 쿠와타가 심하게 선을 넘었고 쿠와타가 욕을 먹어도 할말 없기는 했다. 그 평판 좋은 쿠와타의 몇 안되는 명백한 잘못이자 흑역사 중 하나.-- 야자와는 "뭐 그거 가지고... 나는 신경 안쓴다네. 하지만 이 일로 쿠와타 군이 곤경에 처한게 걱정되는군" 이란 반응으로 쿨하게 넘겼지만 나가부치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에서 대사로, 소속사 차원에서까지 사잔을 디스했다. 거기에 쿠와타는 자신의 1994년 솔로 투어 새해맞이 콘서트에서 이런 나가부치 쯔요시를 비꼬고 놀리는 드립을 치는 등 팬들이 봐도 유치하고 꼴사나운 디스전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그랬다가 90년대 말부터 나가부치 쯔요시가 마약 관련 문제로 일본 연예계에서 빨간줄이 그어지면서 이제는 쿠와타와 별 의미가 없는 관계가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쿠와타와 나가부치 간의 디스전이 위에 간략히 소개한 것 이상으로 꼴사나워지면서 쿠와타에게도 [[흑역사]]가 생겼다는 것. --아무리 수십여년 전이라지만 그때도 상당한 대가로 공인받던 사람들이 참...--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쿠와타유우키1987.jpg]]}}}|| || 1987년 돌이 지난 아기 유우키와 쿠와타 부부. || * 자서전도 낸 사람이지만, 딱 거기서 공개한 정보가 전부인 수준으로 가족에 대해서는 공개된 부분이 적다.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이복 누나인 이와모토 에리코(쿠와타 에리코였지만 남편이 이와모토 토모요라 성을 바꾸었다)가 있었는데 대학교를 영문학과를 나와 생전에 쿠와타 케이스케가 영어가사를 작사할 때 도움을 주어서 일부 곡의 작사 저작권을 받기도 했다는데, 그 외의 사회활동에 대한 정보는 없고 주부로 산 듯하며, 2008년에 암으로 사망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남매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큰 극장을 운영하던 사람이라 1950~60년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부유하게 자랐다고 한다. 자녀는 쿠와타 유우키(1986년생)와 쿠와타 요스케(1988년생)라는 두명의 아들만을 두고 있는데, 2010년대 이전까지 이름과 학교[* 두 아들 모두 부모가 다닌 아오야마학원의 엘리베이터 형식으로 대학까지 나왔다. 2000년 둘째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당시 대히트를 치고 있던 TSUNAMI를 부른 것이 한번 화제가 되었으나 그외에는 공개된 게 없다고 한다.] 외에 거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다가 첫째 아들 유우키가 Real Aloud라는 밴드로 가수 데뷔를 하면서 잠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역시 데뷔한지 몇년 안되어 2015년에 해체하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후에도 음악을 한다는 소문정도를 취재한 기사만 있지 언론에 활동이 공개된 것이 전혀 없다. 데뷔때 그의 아들이 한 인터뷰로는 "음악을 청소년기부터 직업으로 하고는 싶었는데, 아버지 후광을 노리고 자신을 보는 음반사들(즉 아버지가 음반 중 일부 곡을 불러주거나 작곡한 곡을 본인 음반에 넣는 식으로 아버지를 끌어들이는 조건 같은 걸로 계약하자는)만이 데뷔 권유를 해서 그것이 너무 싫어졌고, 그냥 취미 수준으로 아마추어 밴드만 하며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없이 대학졸업 후에도 일반회사도 안 다니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백수로 살기로 하였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로 살았으나 부친의 식도암을 겪으면서 충격을 받았고, 부친이 수술 후 회복하자마자 데뷔를 결심하였다고 한다. 데뷔를 결심하자마자 아버지인 쿠와타 케이스케와 어머니인 하라 유코가 자기들 소속사까지 동원하여 적극 지원하였다고 하는데[* 심지어 그동안 극소수밖에 공개 안하던 아들의 어릴때 사진(자신들과 찍은 사진)들도 언론에 공개해주었다.], 당시 정황과 아들의 인터뷰 뉘앙스상 더 어릴때 데뷔 조건으로 음반사들이 자신들을 걸고 가려고 할 때에도 부모로서의 쿠와타 부부는 그런 음흉한 조건들조차 어느정도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던 듯 하다. 대스타임에도 아들바보면서 아들에 대한 걱정이 컸던 듯.(물론 그렇기에 자식의 자존심이 더 상해서 거절했던 거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어렵게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가 되지 못하고 몇년못가 해체까지 하여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고 한다. 둘째 아들은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라는 정보만 알려져 있고 뭘하고 사는지 알려진 게 없다. [* 소학교 졸업식때 아버지 케이스케와 어머니 유코가 당시 일본을 휩쓴 대히트곡인 TSUNAMI를 교실에서 직접 불러줬다는 게 프라이데이 잡지를 통해 알려졌다.] [[파일:KUWATAHARA.jpg]] 악성 언론에서 자폐증설까지 냈었으나 루머에 불과하다고 한다. * 2015년 주간 현대에서 조사한 일본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에 1위를 차지했다.[* [[파일:external/pbs.twimg.com/B6kmpxeCYAI_7Jo.jpg]]] 그런데 흔히 말하는 "니가 가수냐?"라고 핀잔을 들을 경우에 그 흔히 가수들이 흥얼흥얼 가사를 흘려부르는 가창법으로 가사지를 보지 않으면 무슨 가사인지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성의없는 듯이 부르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콘서트에서도 보여주는 특징으로 "으허허허허헝~" 하고 가사를 뭉개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런 노래의 경우는 노랫말이 야하거나 뭔가 거시기하거나 한 경우이다. * 일본 가요의 절대 거성답게 저작권 수입도 거대하고, 음반 판매량, 대형 공연 및 방송출연 같은 다양한 활동이 꾸준히 많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재산도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86~2006년까지 20년간 납세액이 23억엔(현재 환율로 약 210억원)으로 같은 시기에 활동한 일본 전체 연예인들 가운데 '''3위'''였다. 이로 인해 일본 언론에서 추산한 그의 수입은 69억엔(현재 환율로 약 630억원)[* 현재 엔저 현상이 심해서 그런 거지, 당시 환율로는 760억원이 넘는다.]이다. 저 시기 이전에도 스타였기 때문에 수입이 좋았을 것이고, 저 시기 이후에도 현재까지 10년간의 수입을 더 생각해보면... 거기다가 부인 역시 사잔 올 스타즈를 함께 한 멤버로 큰 수입이 있다. * 역대 누적 음반판매량은 사잔 올 스타즈가 약 4894만장으로 일본 역사상 5위[* 최근에야 수년간의 휴식기를 접고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5천만장을 돌파하지 못했지만, 이미 5천만장을 넘긴 1위 [[B'z]], 2위 [[미스터 칠드런]], 3위 [[하마사키 아유미]]에 이어 일본 역사상 4번째로 5천만장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이고, 쿠와타 케이스케 개인앨범 역시 누적판매량이 1400만장에 육박하는 수준이라 합치면 6000만장이 넘는다. 실제로는 그렇게 말하기 힘들지만, 이렇게 계산하면 일본 음반 역사상 2위가 되는 판매기록이다. 2015년에 사잔 올 스타즈로 복귀한 앨범 포도가 발매 이후 2015년 상반기 누적 판매량 50만장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그룹과 솔로 모두 왕성히 활발하면서 작품성과 대중성 양쪽 모두 균형있게 탄탄한 인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꽤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 리듬게임에도 판권곡으로 수록된 적이 있는데, 주로 [[코나미]]의 [[기타프릭스]]&[[드럼매니아]]. 수록된 노래는 [[波乗りジョニー]]. 사잔 올 스타즈 명의까지 합하면 [[LOVE AFFAIR]], [[涙の海で抱かれたい~SEA OF LOVE~]]도 포함. 아쉽게도 이 3곡 모두 가정용 이식작에는 수록된 적이 없고 판권곡의 한계상 오래 수록되지 못하고 빨리 삭제되었다(LOVE AFFAIR은 드럼 4th, 波乗りジョニー는 10th&9th, 涙の海で抱かれたい~SEA OF LOVE~는 V3에서 삭제).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theqoo.net/Qnn6y0U.jpg]]}}}|| || 그의 일본내 인지도를 나타내는 사진 || * 2016년 2월 26일에 [[환갑|60세를 맞이했다.]] 그 기념으로 레코초쿠, 아이튠즈 등의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에 솔로 곡들이 해금되었다. 해금된 곡은 KUWATA BAND, SUPER CHIMPANZ의 작품을 포함한 싱글 20작, 앨범 9작에 수록된 총 211개의 곡이다. 그 영향으로 레코초쿠나 아이튠즈 랭킹에 쿠와타의 곡이 몇 보인다. 그 중에 [[明日晴れるかな]]와 [[Mr.Children]]과의 합작인 奇跡の地球가 눈에 띈다. * [[박진영]]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아티스트로 쿠와타 케이스케를 꼽기도 했다. [[https://hochi.news/articles/20201006-OHT1T50043.html?page=1|#]] [[분류:사잔 올 스타즈]][[분류:일본의 싱어송라이터]][[분류:일본 남가수]][[분류:일본의 작곡가]][[분류:일본의 작사가]][[분류:일본의 편곡가]][[분류:1956년 출생]][[분류:1978년 데뷔]][[분류:치가사키시 출신 인물]][[분류:아오야마가쿠인대학 출신]][[분류:일본의 프론트맨]][[분류:밴드 보컬]][[분류:자수포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